▲ 두문동재 1048m http://blog.daum.net/onidiras/15874060
▲ 부수문이고개 이정표 http://blog.daum.net/onidiras/15874085
▲ 차령고개 http://blog.daum.net/onidiras/15876070
차령고개의 전설
이 고개는 공주에서 천안으로 통하는 군계로서 옛날에는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넘나드는 상남대로의 가장 큰 고개로 이름나 있었다. 근래에 와서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의 국도 제1호선 중에서 서울까지의 구간 중 가장 높은 고개로 알려져 있다. 산의 높이가 360미터나 되고 고개 양쪽의 산봉우리가 쌍으로 솟아있어 옛날에는 이 고개를 쌍령(雙嶺)고개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공주 이남에 있는 모든 고을의 조세와 진상품이 이 고개를 통하여 한양으로 운반되었는데 어떤 의적이 이를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관원에게 잡혀 죽었다는 민담이 전하고 있으며 또 이고개는 이상하게도 스님만을 골라 해치는 호랑이가 있었다는속설도 전한다. 조선조때 인조(仁祖)께서 이괄의 난을 만나 공주 쌍수성에서 피난하였을 때에 이고개를 넘어 석송정(石松丁)에 머무셨다고 전하는데 이는 석송동천(石松洞天)의 유래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한편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갈 때 원터에서 숙소하고 팔풍정 활원광정 모란 공주 금강을 건넜다고 하였는데 이몽룡 역시 이 고개를 넘었음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팔풍정은 지금의 인풍국민학교가 있는 곳이라고 전한다)
1991.12.
공주대학교 교수 시인 한상각 엮음
완산 이공원 씀
공주군수 전병용 세움
▲ 고도계 차령고개 : 199m http://blog.daum.net/onidiras/15876070
날씨 16.0°
풍속 13kph(km per hour)
일출 7:05
일몰 17:25
북위 36° 39’ 10”
동경 127° 07’ 31”
▲ 사정이고개 이정표 http://blog.daum.net/onidiras/15876194
▲ 미시령 http://blog.daum.net/onidiras/15876963
▲ 백양치 白楊歭 http://blog.daum.net/onidiras/15876988
▲ 개목고개의 유래 http://blog.daum.net/onidiras/15878990
옛날 이 서방이라는 사람이 키우는 개를 데리고 개목 고개를 넘어 아우내장을 보러 왔다. 이 서방은 장터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개목 고개를 넘았다. 고개 중간에서 잠깐 쉬던 이 서방은 곰방대를 풀 섶에 던져 둔 채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곰방대에서 시작된 불은 덤불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한참 뒤 잠을 깬 이 서방은 자신이 잠든 사이 불이 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변이 모두 불타는데 자신이 누워 있던 곳만 불길이 잡힌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키우던 개가 온몸이 불에 그을린 채 죽어 있는 것이었다.
산불이 나자 개는 주인을 살리려고 옷을 끌어당기며 깨웠다. 그러나 주인이 인사불성이었으므로 개가 주인을 구하기 위하여 도랑으로 가서 개 꼬리에 물을 적셔 와 불 끄기를 되풀이하다가 주인을 구하고 자신은 불타 죽은 것이었다. 이 서방은 개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시를 지어 돌에 새긴 뒤 개를 붇은 곳에 의구비(義拘碑)를 세워주었다.
▲ 너릿재 http://blog.daum.net/onidiras/15879263
너릿재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아삽곡리와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을 연결하는 고개
[개설]
너릿재는 무등산에서 장불재로 이어져 남쪽 수래바위산과 소룡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국도 29호선이 통과하고 있다. 너릿재는 1971년 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눈이 많이 오면 한 달 넘게 길이 끊기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낮에도 산적이 나오는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또한 갑오 농민 전쟁 때에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되었고, 6·25 전쟁 때는 빨치산과 국군들이 대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명칭 유래]
『여지도서』에는 “북쪽으로 광주와의 경계에 있는 판치(板峙)까지 가는 길이 9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대동지지』에도 “판치는 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이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이때 ‘판(板)’은 널빤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널재’ 또는 ‘널의 재’에서 너릿재가 되었다. 『조선 지지 자료』에는 한자로 판치라고 표기하면서 동시에 우리말로 ‘밀이재’로 표기하고 있다.
[자연환경]
너릿재는 무등산 정상의 줄기가 남동부로 뻗어 화순군과 광주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지이며, 영산강의 지류인 광주천과 화순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등산~수래바위산의 고봉을 이루다 지장산과 소룡봉으로 이어지는 지형학적으로 안부(鞍部) 지역을 이룬다. 이곳은 북동~남서 방향의 구조선이 통과하는 기반이 약한 곳으로 주변보다 고도가 낮고 분수계를 이루고 있어 일찍부터 화순 지역과 광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발달하였다. http://hwasun.grandculture.net/Contents?local=hwasun&dataType=01&contents_id=GC05600049
▲ 너릿재누리길 http://blog.daum.net/onidiras/15879427
저승재란
전남 화순군 화순읍 도웅리 저승재는 광주시 동구 녹동에 있는 분적산을 거쳐, 화순 소룡봉을 조금 지나치면 그 아래에 저승재가 있다.
돼지 저(猪) 자에 넘을 승(昇) 자를 써서 저승재(猪昇岾)라고 하는데, 멧돼지가 많아 멧돼지가 오르내리던 고개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능주나 화순 도웅리 사람들이 광주장을 가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