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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정리/10월

141025 망덕봉 926m 금수산 1016m 풍선덩굴 용담폭포 운해 독수리바위 꼬리겨우살이 까치고들빼기 씨앗

 

▲ 상천(산수유 마을)

상천마을은 아랫마을을 백운동이라고 부르고 윗마을을 초경동이라고 부른다. 상천리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이 비단에 수를 놓은것 같이 빼어난 산이라 하여 금수산이라고 명명한 금수산을 정상을 배경으로 가은산과 금수산 줄기로 에워싸여 있으며 앞으로는 청풍호를 바라보는 남향마을로 초경동에서 바라보는 청풍호는 가히 결경인 마을이다.

특히, 백운동마을 초입에서부터 용담폭포에 이르는 돌담길 주변에는 봄의 전령인 산수유가 자생 하고 있어 만개한 산수유는 금수산 풍광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산수유 마을이다.

2002년 충북의 자연환경의 명소로 지정된 산수유마을 상천리는 2003년 제천시가 친환경민속마을로 지정하면서 농업홍보관, 참숯 불가마, 휴게식당 등을 조성하였고, 산수유 1천본을 추가 식재하여 친환경 민속마을이자 산수유마을로 유명해졌다. 이 마을은 금수산을 오르는 길목에 있어 매년 수십만의 등산객이 이 마을을 찾고 있다. 이 마을은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여 상천리에서 생산되는 산수유, 사과, 복숭아의 당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하여 특산품으로 자리잡고 있고, 친환경 농산물 또한 이 마을 주민들의 큰 소득원이며, 민박, 돼지목삼겹 등이 이 마을의 대표적 먹을거리로 유명하다.

 

▲ 상천리 소나무

 

▲ 풍선덩굴

 

 

 

 

▲ 용담폭포

 

금수산과 용담폭포
예로부터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한 금수산(錦繡山 1,016m)의 정상은 상악산(上岳山)으로 불렸으며, 이밖에 금수산(金水山), 금수산(錦秀山), 적성산(赤城山), 무암산(茂巖山), 무암산(舞巖山) 등으로 불렀다. 

『중보문헌비고』에 “금수산(錦繡山)은 뭇 봉우리가 수려함을 다투고 10여리를 반거한 그 속에는 약초가 많다.”라고 하였다. 금수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신선봉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용담에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산봉우리의 명당은 주나라 천자의 묘소로 전승한다. 전성에 따르면, 주나라 황제의 세숫대야에 비친 명산을 신하가 둘러보니 산의 정기가 빼어난 명당에 봉분을 만들자 남쪽으로 용담에서 금수산을 수호하는 신룡(神龍)이 울부짖으며 승천할 때 남긴 발자국 3개를 상탕, 중탕, 하탕의 3담으로 부른다. 본래 용담폭포의 유래는 조선시대 ‘용추(龍湫)’라고 불렀으며, 1661년 청풍부사 이단상은  ‘청풍금수산기우문’을 남겨 청풍관아의 주도로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1689년 청풍부사 오도일의 기문 중에 “옛날에 백운암의 노승이 주문을 외워 용을 시켜서 바위를 뚫게하여 못을 만든 연유로 홍수나 가뭄에 기도하는 곳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1970년대까지 인근동민과 수산면장이 용추에서 기우제를 봉행했었다. 용추폭포 위에는 『호서읍지』에 “동문(東門) 수석은 금수산에 있다. 천상리로부터 5리 동구에 석벽이 문과 같으며 청풍부에서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문’이라 한다.”라는 동문의 차단성 안에는 1950년 6.25사변 이전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는데, 1970년대 화전민 철거정책으로 모두 이주하였다. 옛 동산곡에서 용담폭포 동문안으로 들어오는 입구로 용담폭포 위에 시매골 성문재 성터가 있으며, 금수산 자락에 백제의 동대성으로 비정하는 성은 김유신장군이 공취한 것으로 전한다.

금수산과 용담폭포는 2001년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한 30m의 폭포수를 맞으면 신경통과 통증치료에 효험이 있다하여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 운해

 

 

▲ 독수리바위 : 두꺼비바위라 부르고 싶다.

 

▲ 망덕봉 926m

 

▲ 꼬리겨우살이

 

▲ 국가지점번호 라바 6627 8786

 

▲ 금수산 1016m

 

 

 

▲ 까치고들빼기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