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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1/기타사진

기념탑/기념비

 

▲ 대몽항쟁전승기념탑 http://blog.daum.net/onidiras/15874699

 

1253년 몽고군은 다섯 번 쨰로 고려를 침락하여, 충주산성 공격에 나서게 됩니다. 산성에는 침략군을 피하여 들어간 이 지역의 관리, 군병, 농민, 승려, 노비 등이 함께 하고 있었고, 방호별감 김윤후는  이들을 지휘하여 몽고군의 대공세 맞서게 됩니다. 공방전이 석달째 장기전으로 접어들자 성안에는 식량조차 바닥이 났고 바야흐로 위기는 목전에 당도하여 있었습니다. 그 때 김윤후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외쳤습니다 "만일 힘을 다해 적을 막는다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벼슬을 내리겠소" 성안의 사람들은 아래에서 위에 이르기까지 사력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견디지 못한 몽고군을 포위를 풀고 고려 땅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싸움이 끝나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약속대로 신분에 관계없이 관직이 내려졌습니다. 이때 이곳 충주는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충주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 의녀 홍윤애의 사랑 이야기 http://blog.daum.net/onidiras/15875099

 

의녀 홍윤애는 목숨을 던져 사랑하는 사람을 살린 정의로운 제주여인이다. 그녀의 연인은 정조 시해음모에 연루돼 1777년(정조1) 제주에 귀양 온 청년선비 조정철(1751-1831)이었다. 조정철 집안과 원수인 제주목사가 부임하면서 산산히 부셔졌다. 제주목사 김시구는 조정철을 죽일 수 있는 죄목을 캐기위해 그를 뒷바라지하는 홍윤애를 잡아들였다. 혹독한 고문과 몽둥이질을 받아 죽어가면서도 홍윤애는 조정철에게 불리한 거짓자백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의 목숨은 조정을 발칵 뒤집었고 암행어사가 파견돼 진상조사 후 조정철은 죄 없음이 드러나 목숨을 건졌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순조 11년(1811), 제주목사로 자원하여 부임한 조정철은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 추모시가 적힌 비석을 세워 통곡하며 그녀를 "의녀(義女)'라 일컬었다. 홍윤애의 목숨을 건 사랑은 소설이 아닌 실화로 「춘향전」이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드라마틱하다.

 

제주도가 유배지여서 가능했던 실화의 주인공 홍윤애의 묘는 현재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으며 야절한 사랑 이야기를 널리 전하고 넋을 기리기 위해 애월읍과 제6기 애얼읍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여기에 사랑의 종탑을 세웁니다.

 

2013년 8월 일

 

▲ 영동동해고속도로준공기념비 http://blog.daum.net/onidiras/1587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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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얼 상징탑  http://blog.daum.net/onidiras/15877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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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의거 기념탑 http://blog.daum.net/onidiras/15877072

 

 여기 세워진 탑은 1946년 2월 9일 천안의용소방대원과 광복 청년회원이 봉기하여 천안점거를 기도한 좌익 세력을 사전 분쇄하여 우리 고장을 지켜주신 의로운 님들의 업적을 기념하는 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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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덕산699.3m http://blog.daum.net/onidiras/15879277


천안 아산 상생 기념비


  천안시와 아산시는 같은 생활권에서 양시의 화합과 공동의 발전, 시민의 화합을 위하여 2014년 상생협의회를 발족하여 다양한 공동사업 추진을 통해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였다.
  이에 양시는 상생협력을 기념하고 지곳 발전시키고자 이 곳 광덕산에 상생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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