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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1/기타사진

시비

 

▲ 광덕산에 올라 http://blog.daum.net/onidiras/15870551


가뿐 숨 가다듬고 장군바위 타고 넘어
지팡이 몸을 실어 산정에 올라보니
크고 작은 산줄기 발 아래 엎드리고
안개 자욱한 골에 구름에 머흘래라
태고적 신비 가슴에 묻고

마르지 않는 정기로 마음을 다스리며

천년 역사 속에

말이 없더니

아산만 물줄기 호령하여

새 시대를 열게 하고
서해바다 품에 안고 기지개 켠다.
이름모를 산새는 사랑을 노래하고
땀 식은 이마에 산바람이 시원하니
시인이 아님에도 시심이 절로 일어
나옹선사 시 한 구절 읖조려 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 칠갑산 - 작사·작곡 조운파, 노래 주병선 - http://blog.daum.net/onidiras/15873701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木州歌由來

 

고려시대에는 우리고을 목천을 목주라고 물렀다. 이곳에 한 효녀가 살고 있었으니 아버지는 물론 계모를 섬기는 일에도 지극해서 온 마을까지 따뜻했다. 그러나 계모의 간살에 넘어간 아버지는 자신의 혈육을 집 밖으로 내쫒으려 하였다. 효녀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부모를 봉양했지만 끝내 양친의 노여움을 풀지 못해 집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산중 석굴에 다다른 효녀는 어느 노파를 만나 가까스로 옴을 의지 했다. 그곳에서도 효녀는 노인 서기기를 부모님께 하듯 공경하여 사랑을 받던 중 마침내 노파의 아들과 혼인하게 되었다. 부부는 마음을 모아 부지런히 절약한 끝에 풍족한 가정을 일구었다. 효녀는 한편 친정 부모님의 가난한 형편을 알게 되자 곧 모셔다가 극진히 봉양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부모님이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으므로 효녀는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스스로 탄식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木州歌라고 했으니 노래는 목천 고을을 울리고 널리 퍼져나가 이 나라 만민의 가슴을 적시었다. 우리 천안지역 옛어른들은 지금 전해져 내려오는 思母曲이 곧 木州歌라고 후손에게 분명히 일러오는 터이다.

 

 ▲ 사모곡 http://blog.daum.net/crete98/516 http://blog.daum.net/onidiras/15873883

사모곡.hwp

 

호도 히언 마

낟 티 들리도 업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 마

위 덩더듕셩

어마님 티 괴시리 업세라.

아소 님하,

어마님 티 괴시리 업세라.

 

 

▲ 잘 늙은 절, 화암사 중에서 - 안도현(시인) http://blog.daum.net/onidiras/15873902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 감자 꽃 http://blog.daum.net/onidiras/15874698

                                                                            권태응(충청북도 충주, 1918~1951)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 임천석대(林千石臺) http://blog.daum.net/onidiras/15875565


임천석은 북과 거문고를 잘 켜는 고려 영관(伶官)으로 고려가 망하자 건너편 높은 절벽 위에 삼단으로 큰 돌을 축조하고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돌을 놓아 그 위에서 거문고를 키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고려 악사(樂士)이다.

태종이 음률을 잘 아는 것을 알고 부르자 거절하고 다시 강압을 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사를 남기고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상주의 역사서 商山誌에 전한다.)

왕조실록 정조 편에 김광우가 ‘우주 간에 길이 빛날 충절이니 비를 새겨 남기자.’상소하자 정조 대왕이 윤허했지만 현재 비는 찾을 수 없다.

이 곳 상주 모동 수봉리 마을로 낙향하기 백오십여 년 전 파죽지세로 남하한 몽고의 강적을 만나 적의 과반을 사살하여 대첩을 이룬 건너편의 백화산 저승골, 저승폭포, 저승문을 바라보며 또 몽고군이 방성통곡하며 물러간 방성재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임천석대 위에서 북과 거문고로 망국의 한을 달랬을 것이다.

성해응(成海應)의 ‘44명의 신라, 고려인 행적을 담은’ 羅麗遺民傳에도 “임천석대 아래 떨어져 죽으니 수풀 사이로 새들이 슬피 울고 산하가 참담하였다.” 고 임천석을 기린다.

 

 

▲ 임천석대 노래( 林千石臺歌) http://blog.daum.net/onidiras/15875565

 

강세진(姜世晋)


水瀰瀰石崔崔              물은 세차게 깊게 흐르고 바위는 높디높으니

人說林君千錫之故臺      사람들이 일컬어 임천석대라고 한다.

林君麗季時伶官            임천석은 고려 말의 악사였는데

桐絲一鷗                  동강에 낚시하며 갈매기 한 마리

能令鳳凰爲徘徊            능히 봉황으로 배회하게 했다.

麗王淫戱自勦絶            고려의 왕 음란을 즐기며 스스로 지쳐 파멸하니

鵠嶺伯氣寒於灰            고려의 흰 기운이 재 같이 싸늘했다.

掛我珠冠飄遠擧            벼슬자리 의관을 벗어 걸고 표류하듯 멀리 가니

一溪禽鳥近無猜            온 시내의 새들이 친근하여 시기하지 않도다.

抱琴時上百尺臺            거문고 품고 때때로 백척의 대에 오르니

蕭蕭黍離悲風來            쓸쓸한 삶에 슬픈 바람만 불어온다.

一彈潛潛亡國淚            한번 거문고를 타니 망국의 눈물 흘러내리고

再彈咽咽孤臣哀            다시 타니 외로운 신하의 비애 목이 멘다. 

我是麗朝之遺民            나는 고려 조정의 유민인데

嗟爾使者胡爲乎來哉      슬프다. 임금의 사자가 어이해 멀리서 오는가.

幽絲在彈絶命詞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절명사를 다시 타니

頭上麗日看看頹           머리 위로 고려의 해 기울여져 보인다.

曲終自投臺下水           곡을 마치고 스스로 대 아래 물에 몸을 던지니

魂逐遊魚去不廻           넋은 노는 고기 따라가 되돌아오지 않네.

水不渴石不泐             물은 마르지 않고 돌은 닳지 않아

林君義烈與之留           임천석의 의로움이 더불어 머물러 있다.

藁萊烈光                  풀이 무성한 곳에 의로움이 빛나니

暖暖山鳥悲                해맑은 산새소리도 슬퍼진다.

我今發揮歌                내가 이제 노래로 펼쳐

詩傳八垓                  詩로 온 세상에 전한다. 

 

▲ 八節鳴灘  여덟마디 우는 여울 http://blog.daum.net/onidiras/15875565

                                                                     만성 김재륜(1776-1846)

非竹非絲折折鳴              퉁소도 거문고도 아닌데 구비 구비 울리니
自然聲樂石間生              자연의  聲樂이 돌 사이에서 생겼다.
浮泡飛沫雖渠使              뜬 거품 나는 물방울은 비록 네가 시킨 것이나
停則淵澄亦性情              멈추면 맑은 못 되는 게 또한 너의 性情이다.

▲ 진불암 옛터 http://blog.daum.net/onidiras/15875565

 

진불암(眞佛庵)   藏園 黃源善


酹酒林千石       임천석대에서 항신술 올리고

斜陽淨界尋       석양에 암자 찾았다.

人亡庵不見       사람 없고 암자 보이지 않으니

白日故陰陰       한 낮에도 아직껏 느늘음 하네.

 

▲ 청라언덕 http://blog.daum.net/onidiras/15876325

 

대구가 고향인 작곡가 박태준(1901~1986)이 곡을 짓고 노산 이은상이 노랫말을 붙인 가곡이 동무생각이다.

바로 이곳이 푸른 담쟁이 넝쿨이 휘감겨있던 청라언덕이고 백합화는 그가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이란다.

박태준의 꿈과 추억이 서린 이 곳에 노래비를 세운다. 이 언덕을 찾는 이들의 가슴에 청라언덕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길 기원하면서....

 

2009년 6월

 

 

동무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송강정철선생시비 http://jinche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jincheon&dataType=01&contents_id=GC02700415  http://blog.daum.net/onidiras/1587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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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열사 봉화탑 찬가 http://blog.daum.net/onidiras/15877128

 
정의의 상징 이 나라의 딸 류 관순
그대 매봉에 올라 높이 들었던 봉화
여섯 고을 스물 넷 산봉우리마다
내일을 약속하며 같이 타오른 봉화를
이 길로 가야 자유가 있고
이 길로 가야 평화가 있고
오직 이 길만이 사는 길이라고
애타게 일러준 거룩한 봉화였네
 
그대 손에 들렸던 그 정열의 봉화
민족의 끓는 피로써 기름을 삼았기에
악마의 풍우 속에서도 꺼질 리 없었고
오늘은 역사의 제단에 이리도 화사로이
무궁화 꽃송이처럼 피어 오른 봉화라
영원히 겨레의 가슴 가슴에
타오르리라 타오르리라
일천구백칠십칠년 칠월
이은상 글, 김기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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