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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1/기타사진

산성

 

 

▲ 서운산성

 

 

 

▲ 영인산성

 

 

 

 

 

▲ 위례산성/위례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4085

 

천안 성거산 위례성

 

지정별 : 기념물 제248호

지정년월일 : 1998.7.25

위치 : 천안시 북면 운용리 산 81외 2

 

 이 산성은 해발 523m인 위례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태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950m정도이다. 성벽은 토.석혼축공법과 석축공법의 2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흙과 돌로 혼합하여 쌓은 부분을 자연암반을 평탄하게 고른후 1.5m 너비로 2열로 돌을 평행으로 쌓고, 그 위에 흙과 잡석 및 기와조작을 섞어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5m 정도이다. 돌로 쌓은 성벽은 경사가 급한 40m 구간에만 남아 있는데 주로 자연활것으로 쌓였으며, 현재높이는 4m 정도이다.

 이 성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 백제의 도읍지였던 위례성으로 보기도 하나 조사결과 도읍성이라기 보다는 방어를 위한 산성으로 보인다.

 

 

▲ 서운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4961

 

경기도 기념물 제81호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북산리 산2

 

이 성은 서운산의 서쪽 능선에서 서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골짜기처럼 비탈진 사면을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싼 반면식 토축산성이다. 둘레는 약 620m이고 성벽의 높이는 6~8m이며, 성벽 윗부분의 너비는 2~4m인데 성터 안쪽의 흙을 깎아 판축한 듯 성벽 안쪽이 내황처럼 파여져 있다. 동서 양쪽 끝이 높게 된 말안장 모양의 북벽은 거의 자연 지세를 이용하였고, 성안에는 우물 터, 절터와 돌부처가 있으며, 용굴이라 불리는 작은 동굴도 있다.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이라 여겨지는데,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 장군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 한양도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4996

 

서울 한양도성은 사적 제10호로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입니다.

 

 

 

 

▲ 무성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165

 

무성산성은 사곡면 대중리와 우성면 한천리 사이에 있는 높이 614m의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은 자연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쌓았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동쪽 경사면을 에워싸면서 만들어져 성안의 지형은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성벽의 안팎면을 모두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내부는 석재로만 채워 쌓은 협축식으로 축조하였다. 남은 성벽 중 상태가 가장 양호한 서쪽 성벽은 높이가 3~4m에 이르는 구간도 있는데 이 구간에서는 다듬은 돌을 수평을 맞추어 쌓았다. 일부 구간이나 상부 구조에서 자연 할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은 것이 확인되는데 이 부분은 쌓은 시기가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530m이고, 관련 부속시설로는 문지 2개소,건물지 4개소, 저수 시설1개소 등이 있다. 특히 방어력이 취약한 지점에 성 바깥쪽으로 일정 너비 만큼 돌출시켜 방어력을 놓이기 위해 만든 치성이 5곳에서 확인 되었다. 성안에는 관련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홍길동이 성을 쌓고 활동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어 홍길동성이라고도 부른다. 홍길동이 살았다고 전하는 동굴도 있으나 지금은 입구가 막혀 있다.

 

 

▲ 물한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197


 일명 '수한산성(水漢山城)'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산성은 산 정상 부근에 쌓은 산정식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둘레는 약 600m정도이다.
 이 산성에 오르면 곡교천을 비롯하여 온양온천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동쪽으로 꾀꼬리성, 북쪽으로 연암산성, 남쪽으로 백리산성과 중간에 위치한 중요한 장소임을 알게된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쌓은 협축, 내탁의 방법을 사용하여 동쪽은 높게 서쪽은 조금 낮게 쌓여있다. 성벽의 폭은 4m정도이며 성벽 내부에는 5~10m정도의 호를 파서 성내의 배수와 통로로 이용하였다.
 동쪽 성문과 서쪽 성문이 있던 자리도 확인할 수 있는데 서쪽 성문은 반정도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안쪽은 자연할석을 사용하고있다.
 산성의 내부는 서쪽을 향해 약간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산성내의 물은 서쪽 성벽의 배수시설을 통하여 밖으로 배출했던 것으로 보이며 산성내부에서는 회색의 단단한 격자무늬 토기의 파편들이 상당량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산성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꾀꼴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197

 

탕정면 용두3리 산골과 음봉면 송촌리 경계에 있는 테뫼식(산 정상부만 둘러쌓는 방식)석축 산성으로 성의모양이 마치 꾀꼬리가 집을 지은 것처럼 생겼기 때문에 유래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앵리산성(鶯里山城)'이라 하고 '둘레 655척(尺) 높이 7척이며' 폐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안 바위 아래에서 굴이 있어서 불을 때면 백석포 강 한 가운데에서 연기가 난다는 설화가 깄다. 또한 물한성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규모는 크지 않고 축조 연대는 백제시대로 전해지고 있다.

 

 

▲ 물한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204


 탕정면 용두3리와 음봉면 송촌리, 동천리가 접하는 물한산 정상부에 있는 동고서저 형태의 포곡식(包谷式-계곡을 포함하여 성을 쌓는 방식)석축 산성이다. 동쪽의 꾀꼴성과 약 500M 정도 거리에 능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처음 쌓는 시기는 불명확하며 흔히 백제 때부터 있던 성이라고 구전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한산성(水漢山城)'이라 하고 둘레 1420척(尺)에 높이 10척이며 폐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벽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무너진 상태이며 성문터와 건물터, 기와 조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성의 이름은 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인데 이름이 여러 가지로 발음하는 것처럼 물앙성, 물왕성, 물안성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며 한자로는 수한산성(水漢山城)이라 한다.

 

 

▲ 고려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386

 

 

 

 

▲ 고려산성(高麗山城) http://blog.daum.net/onidiras/15876386

 

위치 :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산27, 고등리 산113번지
       해발 : 305m, 성둘레 250m 토석혼축성(퇴뫼형)
유래 :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사비도성이 무너진 후 백제 부흥군이 3년여에 걸친(서기 660년-663년) 항쟁본거지의 하나였으며, 그 후 고려충렬왕 17년(서기 1291년 5월) 정좌산(正左山)에 침입한 합단적(哈丹敵)을 고려 3장군(한희유, 김흔, 인후)이 연기전역에서 대승을 거두므로, 이는 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의 음덕(陰德)이라하여 연기군 조산성(組山城)인 이 곳에 고려 태조묘(太祖廟 사당)를 세워모신 이 곳을 고려산성(高麗山城)이라 부르게 됨.

 

 

▲ 고려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447

 

 

▲ 금이성(金伊城) http://blog.daum.net/onidiras/15876716

 

지정별 : 기념물 제5호
지정년원일 : 2012.12.31.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산86 외 2필지

 

 해발 430m의 금성산에 축조된 길이 714m에 이르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철옹성(鐵瓮城) 같다하여 쇠성 또는 금성(金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의 폭은 4.5m-5m에 이르고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높이는 3m 정도이다.
 남쪽의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시설물은 성의 북단과 동단·서남단에 망루지의 형태가 남아있고, 동·북·서쪽에서 문터가 확인된다. 성내 정상부에 건물터의 흔적이 있으나 자세하지 않다. 성내에서 고려시대 유물로 보여지는 항아리, 대접, 사발 등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는데 고려시대에 축조된 듯하다.

 

 

▲ 천안 세성산성(天安 細城山城) http://blog.daum.net/onidiras/15876930

 

지정별 : 기념물 제105호
지정년도 : 1997년 8월 5일
위치 : 천안시 성남면 화성리 산25

 

세성산 정상부를 감싸고 축조한 내성(內城)과 그 남쪽 산기슭에 외성(外城)을 갖추고 있는 복합산성이다.

 

내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자연학석(自然割石)으로 쌓았으며 둘레는 350m이고, 높이는 3m 정도이다. 내성 동쪽에는 너비가 2.8m인 동문터가 확인되고 있다. 외성은 내성 남쪽 벽의 외곽(外廓)에 흙으로 쌓았는데, 높이는 1.5m이다.

 

내성에서는 쇠뿔모양(牛角形)의 손잡이와 무늬가 없거나 또는 격자(格子)무늬가 이ㅛ는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발견도며, 외성에서는 연질(軟質)의 적갈색 토기와 경질(硬質)의 토기조각이 수습되고 있다.

 

『대록지(大麓誌)』에는 삼국시대의 농성(農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갑오농민혁명사』에는 동학혁명군이 이 성에 집결해 있다가 죽산부사(竹山府使 이두황(李斗璜)에게 패산된 기록이 있어 이 산성이 오랫동안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망월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6965

 

 

▲ 동성산성 학술 발굴 조사 http://blog.daum.net/onidiras/15877121

 

 

▲ 운주산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77337

 

 

▲ 신창학성 http://blog.daum.net/onidiras/15881759 

 

신창학성은 학성산 정상부에 돌을 쌓아 만든 산성이다. 성은 산맥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의 둘레는 500m에 이른다. 성의 북쪽으로는 곡교천이 있고 남쪽으로는 신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약 7km 떨어진 곳에 아산 시내가 있다.

성벽은 수평을 맞추면서 돌을 쌓는 '바른 층 쌓기' 방식으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채우는 편축식으로 쌓았으나, 성문 주면과 능선이 이어지는 곳에는 성벽의 양쪽 면을 돌로 쌓고 중간에 흙이나 돌을 채우는 협축식으로 쌓았다. 이러한 축조 방식은 이 성이 백제 때 처음 만들어졌음을 알려 준다.

성의 북쪽과 서쪽에는 성문의 터가 있고 성안에는 넓은 대지가 있다. 성 안에서 발견된 생선뼈무늬, 격자무늬, 민무늬 기와 조각은 이 성이 오랜 기간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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